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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시각] 양심에 국민에 역사에

@주현정 입력 2020.06.18. 18:19 수정 2020.06.18. 18:23

그를 향한 비난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로웠다. 매국노라느니, 인기영합주의라느니, 어리석은 자라느니 보수우익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에게 거센 반발을 샀던 그는 그러나 세계인들에게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길을 닦은 인물'로 꼽히고 있다.

1970년12월7일, 밤새 내린 비로 추적추적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이었다. 말끔한 차림의 그가 두 손을 모으고 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털썩, 이내 두 무릎을 꿇었다. 젖어있는 바닥 따위는 중요치 않아보였다. 그렇게 30초간 양손을 맞잡은 그는 머리 숙여 용서를 구했다. 카메라 셔터가 빠르게 터졌다. 현장의 모습은 고스란히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당시 언론들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 전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의 유명한 일화다.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여전했던 냉전체제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던 브란트 총리가 나치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던 그 모습은 훗날까지 '평화와 양심의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를 향해 전쟁 가해 국가로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지겠다는 선언이자 폴란드와의 영토 문제로 자국 내에서 반역자 등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있었던 그가 국민들에게 보내는 침묵의 메시지였다.

"말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던 50년 전 브란트 총리의 용기있는 사죄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어 주는 건 '그' 역시 사죄를 할 마지막 기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반성과 사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오는 22일 또 다시 피고인 없는 재판이 열린다.

이날 재판에는 1980년 당시 신군부의 핵심이자 군 지휘계통에 있는 인물인 전 계엄사령관 등의 증언이 예정되어 있다.

예단하기 이르지만 지난 40년간 늘 그랬듯 이날도 우리는 가해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골프와 초호화 만찬을 즐기는 삶을 살면서도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것은 힘에 부친다는 그를 대신해 재판장, 검사, 고발인, 변호인, 5월의 사람들은 진실의 조각을 맞추느라 애를 쓸 것이다. '재판의 희화화', 이 재판을 이끌고 있는 변호인의 표현이 다시금 가슴에 날아들 것 같다.

진정 행동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보여줬던 브란트 총리처럼 우리는 언제쯤 가해자의 용기있는 사죄를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주현정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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