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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의병과 나

@김지용 청연한방병원 병원장 입력 2019.09.29. 13:38
전동호

전동호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조선 개국(1392년 8월 5일, 음력 7월 17일) 200년이 흘렀다. 만력(萬曆) 20년(선조 25. 1592) 5월 23일(음, 4. 13), 만상이 쉬어가는 유(酉)시에 다대포 해상으로 안택선(아타카부네), 관선(세키부네), 소조(고바야)의 무리가 밀려온다. 대정(덴쇼) 15년(1587)에 열도를 통일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60여 장수를 포함한 30만 대군을 보내 가도입명(假途入明)을 요구한 것이다. 임진년 왜란이다. 명나라를 사대(事大)하던 조선은 들어줄 수 없으면서도 관망만 하고 있었다. 날이 새면 돌변할 왜의 정체를 몰랐던 것일까? 다대포진, 부산진, 동래성이 무너진다. 6월 1일, 의령에서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키며 분전했지만 10일(음 5. 1) 새벽에 선조가 평양 몽진(蒙塵) 길을 나선다. 성난 백성들이 궁궐에 불을 놓고 이틀 뒤 왜적이 들어온다. 그날 진해루(진남관)에선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경상바다로 나갈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다음날 13일 판옥선, 협선과 포작선 85척이 출진한다. 사흘 뒤 옥포만에서 첫 왜적과 마주친다. 물령망동 정중여산(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산처럼 묵직하며 침착하라), 이순신이 외친다. 이틀 동안 42척을 격파한다. 갑오년(1594)까지 당포, 한산도, 부산포, 웅포, 당항포 승첩으로 꺼져가던 조선의 불씨를 되살려낸다. 이순신은 선조 16년(1583) 율곡이 시무육조에 실은 십만양병설에 따라 병법의 전략과 전술을 스스로 쌓아왔던 것이다.

조선은 위기에 빠졌지만 민초들은 달랐다. 반상(班常)의 차이를 넘어 벙어리, 향단이와 마당쇠의 아들까지도 의병이란 이름으로 들불처럼 일어난다. 영암 전몽성(全夢星)도 고경명이 이끈 금산전투에 참여한다. 하지만 8월 15일(음 7. 9) 패퇴하고 만다. 몽성은 이대로 죽기엔 무익하다며 남은 군사를 이끌다가 선조의 선전관(宣傳官)이 된다. 계사년(1593) 5월 왜는 항왜원조(抗倭援朝)를 내건 명과의 교섭을 빌미로 남쪽으로 향한다. 7월 20일(음 6. 22) 그들 10만에 의해 진주성이 함락된다. 김천일, 최경회와 논개,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 등 호남의병을 포함한 7만이 순국한다. 그해 10월 의주에서 선조가 돌아온다. 정유년(1597) 봄이 되자 풍신수길이 다급해진다. 한강 이남이라도 강점하라며 14만 천오백을 재차 파병한다. 그의 계략은 삼도수군통제사마저 원균으로 바뀌게 한다. 그 결과는 8월 27일(음 7. 15) 칠천량에서 나타난다. 조선은 대패했고, 왜는 해상 장애물을 제거하며 남원성을 도륙하고 남도 땅까지 유린한다. 고향 백성을 돌보던 몽성이 다시 나선다. 막내아우 몽태에게 늙은 아비를 부탁하곤 동생 몽진과 의병을 모은다. 강진으로 가는 율치(밤재)에서 왜적을 몰아낸 며칠 후, 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이 10월 25일(음 9. 15) 명랑에서 단 12척으로 왜선 133척을 깨트렸다는 낭보를 접한다. 그럼에도 해안가의 노략질이 계속되자 이순신이 방책을 요청한다. 몽성은 은적산 뒤 해암포(은곡리 석포)를 평정한 후 유점동(매월리 놋점골) 어귀에서 한 무리의 왜적을 물리친다. 다음날 대포와 총알을 날리며 사방을 에워싼 적이 또 몰려온다. 몽성은 나무에 의지하여 활을 날리지만 다를 감당하진 못한다. 정유년 11월 3일(음 9. 25) ‘나라를 위해 한번 죽음이 있을 뿐이다’며 아우 몽진과 함께 순절하니 그의 나이 37세였다. 을축년(1685) 숙종조에 임란항의위국연생(臨亂抗義爲國捐生) 여덟 자와 장동사가 내려진다. 이후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충효문과 신도비가 세워진다. 몽성의 아들 여홍은 상복을 입고 노량해전(무술년 11월)까지 참여하며 선조원종공신에 녹훈된다. 호남절의록의 기록이요, 천안전씨 두평군가의 내력이다.

임진년 이전에도 크고 작은 왜란이 있었다.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명종 2년(1547) 삼랑진왜변과 10년(1555) 을묘왜변, 선조 20년(1587) 여수 존죽도 앞바다에선 22살 녹도만호 이대원이 전사한다. 임란발발 300여년이 흐른 고종 31년(1894) 조선은 청일전쟁 터로, 동학농민군의 피로 물든다. 그리고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하며 나라마저 빼앗긴다. 1945년 8월 빼앗긴 땅과 주권을 되찾았지만, 아직도 왜의 잔재를 다 치유하진 못했다. 현대판 의병이라도 나설 때지만 감정만 앞세울 순 없다. 먼저 우리 주변부터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선열들이 어떻게 싸웠는가? 거북선, 망암화차, 조선조총, 간양록, 구고사, 소호정, 양달사와 장독샘의 고향이 어디인지?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개고생 한 걸 알기나 할까?’에 보답하는 일이다. 이제 그 시대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 모을 차례다. 그 정신을 배우고 ‘지피지기 백전불태’라 한 고전의 지혜를 늘 기억하게 하자. 9월의 마지막은 명랑대첩축제로 빛났다. 그 시대를 살았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잠시 눈을 감는다. 오늘도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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