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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작은 졸업식

@김현주 광주인성고 교사 입력 2020.02.17. 18:00 수정 2020.03.08. 22:22

올해 졸업식은 특별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졸업식이 각 교실에서 치러졌다. 마스크를 쓰고 앉은 학생들이 방송을 통해 수상식과 응원과 축하의 말씀들을 시청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담은 영상이 이어진 후 교실마다 교가가 울려 퍼지면서 행사로서의 졸업식은 간략하게 마무리되었다. 전체 학생들이 학교 강당에 모여 학부모님과 여러 내외빈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지던 졸업식 행사를 간단히 방송으로 진행한 것이다. 과거 행사에 비해 어떤 행사 순서를 생략했는지 살펴 보니 대학 진학 현황을 알리는 학사보고와 몇몇의 수상이 생략되었다.

이번 졸업식 행사를 보는 교사의 시선은 다양했다. 허전했다는 교사들은 그래도 졸업식인데 전체가 모여서 축하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면 좋지 않았겠는가 하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이런 졸업식도 좋았다는 교사들은 졸업식날 학생들과 교사들이 좀더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로움이 있어 좋았다고 했다. 아무래도 강당에 모이면 연단 중심의 행사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졸업식 방송 중 가장 집중했던 순간은 자신들의 지난 3년간의 모습이 나올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학식, 수학여행, 수련회, 체육대회, 동아리 활동, 축제 등 학사보고와 상장에는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기억들과 추억들이 자신의 기억에서 멀리 숨어 있다고 생각했던 나날들을 불러 오고 있었다. 그 모습들을 보며, 졸업식이 아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한 순간들로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의 중요성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마는 그것만을 이야기하는 행사라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어느 대학 몇 명으로 이야기하기에 아이들의 3년은 때론 화려하고 때론 서럽고 때론 억울하고 때론 실수와 잘못의 반복이고 때론 즐겁고 때론 감동적이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졸업식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심하게 다툰 아이가 지혜롭게 사과하고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좋고, 입학할 때는 교과 학습에 흥미가 없던 아이가 차츰 학습에 흥미를 갖게 되고 학업 능력이 성장한 이야기도 좋고, 학교 생활 내내 기타만 연주하던 아이가 고3에 와서 음반을 내게 된 이야기도 좋고, 꼭 성공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실패하고 좌절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이야기도 좋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아이들의 기억과 아이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연단의 중심에 세우는 것을 고민해보는 것, 이것이 연단에 선 이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수가 아닌 모두를 기억하는 졸업식이길 바란다. 교실에서 단촐하게 이루어진 졸업식이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자신이 졸업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부터 느꼈길 소망한다. 학급에서 방송으로 시청하던 행사가 끝나고 교실 앞으로 나오는 아이들 한 명씩에게 졸업장을 나누어 주고 학급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수줍게 몇 마디 하는 아이들과 자신의 자취방에 놀러오라는 아이들, 격려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이들, 그리고 학급 친구들로부터 다툰 친구에게 사과하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요구를 들은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머뭇머뭇 했지만 끝내 사과를 하진 않았다. 아니 못했을 수도 있다. 어떻게 되었든 떠밀리듯 사과를 하진 않았다. 요즘말로 쿨하게 사과하고 가도 좋았을지 모르지만 사과는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진정성 있는 자신의 언어로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서로에게 끝내 사과를 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그 사과를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졸업식을 떠올리면 잊지 못할 친구 한 명을 가슴에 간직하게 되었다. 그날 다같이 모여 찍은 사진을 보니 다들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래 맞다. 이 아이들의 인생은 아직 다 드러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먼 훗날 이 시절을 떠올리며 왁자지껄 떠들고 웃을 수 있고 아름다웠다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 이 시절이 아름다운 것은 젊었기 때문이란 것을 기억하며 늘 젊게 살고 있기를.

김현주(광주인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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