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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 투표는 끝나고

@김현주 광주인성고 교사 입력 2020.04.27. 16:40 수정 2020.04.27. 16:58
김현주

학년 초 아이들에게 가족들 연락처를 받아 둘 때가 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부모님과 형제들의 연락처를 받아 두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상담하다 보면, 이젠 더이상 아이의 곁에 있지 않은 가족들의 연락처를 그대로 적어 둔 경우를 알게 된다. 가족 중 한 명이 불의의 사고든 또는 어떤 이유로든 아이의 곁을 떠났더라도. 그럴 때면 우리 교사들은 이 아이가 자신의 가슴에서 그 누군가를 아직 떠나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현실에서 그 가족이이 법적인 실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아이의 가슴에 오롯이 아로새겨진 시간들과 역사와 삶이 있다는 것을 연락처를 빈칸으로 두지 않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 표현만으로도 한 아이가 그 가족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바로 알게 된다. 아이에게 정서적 심리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그 가족과의 기억과 삶에 대해 우리 교사들은 묻게 되고 우린 그 아이의 삶을 보다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떠나보낼 수 없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또 다른 어떤 단체든 집단이든.

투표가 끝났다. 2013년 10월 18일이었다. 투표인원수 59,828명, 투표율 80.96%, 거부한다 68.59%, 수용한다 28.09%. 전국교직워노동조합(전교조)에서 전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 결과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 규약 중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한다'는 조항이 교원노조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노조 아님을 통보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이에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투표를 진행했다. 이 투표에서 약 70%의 조합원이 아홉 명의 해직 조합원을 안고 가는 길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당시 정부의 요구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노동기구와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요구사항에 비추어 보아도 부당한 요구였기 때문이며, 부당하고 억울한 일로 해직된 조합원을 조합에서 내보낸다는 것은 조합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서 드러났듯이 2013년 10월 벌어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사법농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당시 대법원과 청와대의 사법거래로 이루어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나라 안에서도 국가인권위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에서도 그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당시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들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제 전교조의 법외노조 건은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건을 전원합의체로 돌렸고 두 차례의 심리를 진행했으며 마침내 앞으로 한 달 뒤인 5월 20일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공개변론 이후 6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리게 되어 있다고 한다. 법외노조 통보 이후 6년이 넘어서야 이 문제가 법적 판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늦어도 너무 늦은 재판이다. 비록 늦은 재판이지만 이 재판이 사법 적폐를 청산하는 정의로운 판결이 될 것을 믿는다. 또한 이 재판의 결말이 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과 국제노동기구의 핵심 협약 중 아직 국회의 비준을 받고 있지 못한 결사의 자유나 단결권 보장 등을 비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의 책임을 다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의 토대를 다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덧붙여 박근혜 정부의 행정처분으로 이루어진 일인 만큼 행정처분을 취소하여 끝낼 수 있는 전교조 법외노조 건이 긴 재판으로 이어지며 정당한 노조활동에 장애를 형성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으로 들어선 정부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돌아볼 일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투표는 끝났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선택에는 바람이 담겨 있고 책임이 따른다. 선택된 사람도 선택한 사람도 책임져야 할 몫들이 있다. 투표 결과만큼 국민들의 바람은 간절했다. 우선은 코로나19를 겪는 사회적 혼란에 잘 대응해달라는 요구이기도 하지만 촛불항쟁을 통해 들어선 현 정부가 아직 달성하지 못한 적폐 청산과 새사회 건설을 힘있게 밀고 가달라는 요구이기도 했다. 우린 종자를 뿌리듯 투표 용지를 민주주의 땅에 심었고 이제 물을 주는 중이다.

김현주(광주인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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