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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방사광가속기'와 '호남 상실(喪失)의 시대'

@윤승한 입력 2020.05.13. 17:42 수정 2020.05.13. 17:57

호남에 상실과 박탈의 그림자가 짙다. 절실하고 간절했단 반증이다.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통한 미래 신성장 혁신산업의 획기적 발전은 520만 호남인들의 염원이었다. 그 염원 속엔 호남이 더 이상 소외되고 낙후된 국가의 변방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바람이 가득했다. 호남인들은 하나로 뭉쳤고 한 목소리로 '호남권 구축'을 외쳤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로 철저히 묻혔고 정부는 또다시 호남을 외면했다.

지난 8일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공모 사업이 일단락됐다. 승리는 충북 청주(오창)가 거머쥐었다. 유치를 희망한 곳은 총 4곳이었다. 나주와 강원 춘천, 경북 포항, 충북 청주였다. 이 가운데 막판 정부의 테이블 위 선택지에 이름을 올린 건 나주와 충북 청주였다. 나주는 서류심사와 발표 평가에 이어 현장평가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한 채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나주 탈락의 아쉬움은 깊다. 유치 성공 기대감이 컸기에 그렇다. 나주는 최적의 입지여건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까지 모두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실제 안전성과 확장성은 최대 강점이었다. 화강암 기반의 예정부지는 자연재해에 강한데다 강도 3.0 이상의 지진도 지난 50년간 단 3차례만 기록돼 다른 지자체에 비해 월등히 적었다. 예정부지 인근에 추가로 활용 가능한 부지도 160만평이나 됐다.

생활·의료·교육 등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의 정주 여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파급효과가 전남을 비롯해 광주와 전북 등 호남 3개 광역 시·도에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나주에 방사광가속기가 구축될 경우 전남은 에너지·바이오 산업, 광주는 인공지능(AI)·자동차 산업, 전북은 탄소·농생명 산업의 성장과 도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호남소외 극복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호남이 하나로 뭉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3개 시·도 단체장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과학계, 기업인, 교수·총학, 출향 향우회원들까지 모두가 나섰다.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국민청원까지 진행했다. 근래에 볼 수 없었던 호남의 응집이었다. 수도권과 수도권 인근에 집중된 국가발전계획의 물꼬를 호남으로까지 확장해 보자는 낙후된 지역민들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하지만 평가지표의 불공정 논란 속에 호남의 꿈은 좌초됐다. 입지조건의 배점은 100점 만점에 50점이었다. 바로 이 조건이 시설 접근성 등 수도권 인근 지역에 유리하게 짜여지면서 애초부터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돌았다. 승패의 분수령이 된 서류심사와 발표평가에서 나주와 충북 청주의 점수차는 단 '3.21점'이었다. 정부가 최종 결과를 발표하면서 충북 청주에 대해 "특히 지리적 여건, 발전가능성 분야 등에서 타 지역 대비 우수한 평가를 받아 최적의 부지로 선정됐다"고 설명한 부분은 주목된다.

자성론과 함께 지역사회 반발이 거세다. 한 차례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준비해온 충북에 비해 전남은 안일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입지 여건에도 정부를 상대로 한 설득 노력이 충분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권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불공정성 논란이 불거졌을 때 호남인들의 요구는 정치권이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말바꾸기 등 돌아온 건 실망스런 모습뿐이었다. '이게 더불어민주당에 보낸 맹목적 지지에 대한 보답이냐'란 자조 섞인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사광가속기가 '호남 상실(喪失)의 시대'를 초래했다. 한번 흘러간 물을 되돌리긴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원망만 하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방사광가속기 호남 구축의 필요성은 이번 공모 과정에서 여실히 확인됐다. 여건도 당위성도 모자람이 없다. 지역민들의 염원도 여전하다. 그런 만큼 지금 필요한 건 좌절하지 않고 다시 준비하는 일이다. 치밀하게 명분을 쌓고 논리를 확충해 정부를 상대로 다시 설득하고 요구해야 한다. 정부도 방사광가속기 추가 구축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호남에 대한 치유나 배려를 넘어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윤승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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