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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유역 철기생산 4세기부터 시작됐다

입력 2020.07.06. 10:27 수정 2020.07.06. 18:36
목포대 김상민 교수 '5-6세기…'서 주장
철기생산 공방 5세기 중엽 등장
고대사회 자체적 생산 동력 주목
복암리 집단 중심세력 성장 계기

영산강 유역 철기생산은 대규모 취락 내 단야흔적(대형 수혈 한 곳 안에서 불로 철을 녹인 흔적) 등을 통해 4세기부터 대규모 취락을 중심으로 진행됐고 전문적인 철기생산을 위한 공방의 등장은 5세기 중엽 이후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상민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최근 열린 올해 마한연구학술원 국제학술회의에 제출한 논문 '5-6세기 영산강유역 철기생산과 장고분(전방후원형고분)의 상관성'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5-6세기 영산강유역에서 주목할 수 있는 고고학적 현상 중 하나로 철기생산공방의 등장이라고 본다"며 "나주 복암리유적과 광주 오선동유적 등에서 출토되는 철기생산유구와 관련 유물은 5세기 중엽 이후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자체적 생산을 위한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또 "백제의 웅진천도 이후 영산강유역 내 지역사회의 결속과 성장을 위한 고고학적 요소는 다양한 양상을 드러낸다"며 "이중 전방족원형고분 내 슬래그의 출토라는 고고학적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암 자라봉고분에서 출토된 슬래그(용광로에서 금속을 녹일 때 쇳물 위에 뜨거나 찌꺼기로 남는 것의 총칭)는 일반적인 삼국시대 슬래그와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며 "5세기 중엽 이후 영산강 중류 유역이 철기생산의 중심거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복암리유적의 철기생산 공방에서는 조업 시 적절히 소형 할석을 활용했고 잔존하는 슬래그에서 그 흔적이 확인된다"며 "자라봉고분 슬래그의 특징을 함께 고려하면 복암리유적 일대의 철기생산 공방에서 생산된 부산물이 자라봉고분의 서변 주구에 봉헌될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와함께 "복암리 지역 집단은 백제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성장했고 이후 철기생산 도입과 함께 영산강유역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며 "철기생산 공방이 운영된 5세기 후반-7세기 중엽에 이르는 기간 중 연관된 슬래그의 공정이 조업된 시기는 단정할 수 없으나 자라봉고분의 슬래그를 공헌한 주체는 백제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성장한 복암리세력과 연결된 지역집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영산강유역 지역집단에서 동화(同化)라는 관점에서 5세기 중엽 이후 이 일대 중심세력으로 발전하는 복암리 세력과 가까운 지역 집단이 제사의 주체라고 한다면 피장자 역시 같은 성향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같은 시기 대표적인 철기생산 공방인 나주 복암리유적의 자료를 살피는 과정에서 두 유적의 슬래그에서 보이는 상관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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