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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품 취급받는 사람들을 위한 哀歌

입력 2020.07.13. 10:47 수정 2020.07.13. 16:13
담양출신 조현작가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유쾌하면서도 기괴한 문체로 인생 묘사
행복한 결말로 문학에 대한 믿음 일깨워

소설가 조현은 다른 순수문학 작가들과 달리 생소한 영역인 장르소설에 대한 천착을 통해 그 관심사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담양 출신 조현 작가가 장편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현대문학刊)를 펴냈다.

이번 작품은 당대 한국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27번째 소설선으로 출간됐다. 소설은 슬랩스틱 스파이물에서부터 오컬트 오페라까지 여러 스타일을 넘나들며 음모와 묵시, 환상과 광기를 동원해 유쾌하면서도 기괴한 방식으로 펼쳐냈다.

이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우주에서 이페머러(ephemera:잠깐 쓰고 버리는 것)로 취급 받는 사람들을 위한 애가(哀歌)이자 연가(戀歌)이다.

작가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독특한 우주적 상상력과 작품에 내재된 낯선 사회의식으로 재미와 작품성을 갖춘 자신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무해한 취미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재단 설립 취지라는 (재)세계희귀식물보호재단이 주된 작품의 고리다. 수상쩍은 이 글로벌 재단 구성원들의 주 업무는 야생 동식물에서부터 오컬트의 유산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희귀품에 대한 자료조사 및 수집이다.

수차례의 구직 활동 끝에 재단 인턴으로 일하게 된 나는 조선시대의 성인용품에서부터 벽사부적에 이르기까지 온갖 골동품의 조사 활동과 여러 테스트를 거친 뒤 마침내 계약직 연구원으로 임용된다. 그러나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여전히 불안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그즈음 미국 CIA에 '마이스터 X'로부터 경매에 참가하라는 초청장이 날아오고 CIA는 세계평화에 변수가 될 수 있는 물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 경매에 나와 나의 보스 제인에게 참여를 권한다.

마이스터 X가 원하는 물품을 제출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 이 경매에 참여하기까지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 요원들과 총격전도 벌이는 등 우여곡절도 겪게 된다. 정규직이 돼 여자친구와의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하고자 나는 경매에 전투적으로 매달리고 경매 과정 중 환각의 상태 속에 마이스터 X의 질문을 받으며 세 가지의 시험에 빠지게 된다.

시험의 과정을 통해 나는 이페머러를 이용하고자 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그것들이 한 번 읽고 버려도 되는 잡동사니가 아니라 각자 고통에 찬 묵시록이라는 것을,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여자친구 역시 지금 자신만의 묵시록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품은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소설은 결국 빙의들린 언어, 언령의 생생한 체험담이자 문학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조현 작가는 "누구나 저마다의 묵시록을 품고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자주 연옥이 살갗을 스치는 일상 속에서 우리 모두 가끔은 기이한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69년 담양 출생으로 숭실대 행정학과와 국민대 종합예술대학원을 나와 지난 2008년 동아일보로 등단,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새드엔딩에 안녕을' 등을 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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