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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화의 명징이 된 '그날, 민중의 힘'

입력 2020.05.12. 17:01 수정 2020.05.18. 15:04
5·18 40주년, 이제는 역사연대다 <5> 6·10항쟁
광주·전남이 지핀 민주화 열망
박종철·이한열 희생으로 재발아
피눈물로 일궈낸 대통령직선제
더 많은·다양한·좋은 민주주의 계기
호헌철폐와 독재타도의 현수막이 걸린 명동성당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87년1월14일, 같은 해 6월9일 '그 날의 그 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기준을 명징하게 나누는 기준이 됐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됐던 민주화를 위한 열망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민주쟁취!'라는 거대한 외침으로 커지며 대학생을 넘어 화이트칼라 등 넥타이부대, 일반 시민들로 무섭게 번져나갔다. 1980년 5월 너무나 찬란했지만 아쉽게도 미완으로 끝이 난 민주화운동의 한(恨)과 분(憤)과 아쉬움이 박종철, 특히 이한열 열사의 희생으로 재발아 된 셈이다.

10일 국민운동본부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한 대규모 시위를 시작으로 이어진 범국민 차원의 6·10항쟁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의 6.29 선언으로 일단락됐다. 그리고 열흘 후 결국 숨을 거둔 이한열을 추모하기 위한 100만 명이 밀집했던 7월9일 장례식은 6월 항쟁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6월 항쟁은 기나긴 대한민국 민주주의사의 최대 과제이자 난제였던 '국민에 의한 권위주의 통치 타파'를 이뤄낸 핵심 역사로 기록됐다.


▲오직 민중의 힘으로 일궈낸 역사

한국전쟁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국민들의 독재타도, 민주쟁취 열망은 4·19와 5·18을 거치며 6·10항쟁으로 마무리됐다. 수많은 희생과 피눈물을 감내해야 했지만 대통령 직선제 시행, 헌법 및 정권 개혁안 등 한국 정치와 법률의 기반 등을 마련하며 '시민의 힘'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줬다는 평가다.

1986년까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광주와 전남이 본격적으로 지핀 민주화의 열망은 5공 정권의 강력한 탄압에도 전국 각지로 확산됐지만 번번이 혹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1987년1월13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로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하루 만에 숨진 채 박종철 열사의 사인 은폐 사건을 계기로 민심은 다시 들끓었다.

고문치사 주범들의 처벌로 정리되는 듯 했던 이 사건은 당사자들의 감방 소란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으로 전달, 5·18민주화운동 7주년이던 5월18일 사건이 은폐·축소 조작된 것으로 공식 발표되며 전 국민의 폭발적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 열사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6월10일 전국 대규모 대학생 집회를 하루 앞두고 사전집회에 참석한 이 열사가 정문 앞 행진 과정에서 경찰이 직사로 쏜 최루탄에 후두부를 크게 다쳐 동료 학우에 의해 부축되는 장면이 뉴욕타임즈과 중앙일보 등에 보도되며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전까지 산발적으로 전개되던 민주화 투쟁은 비폭력투쟁 민주헌법 쟁취 선언, 전국민적 민주화 투쟁의 구심체가 돼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진정한 민주화로 가는길

수 많은 희생과 피·눈물이 쌓여 이룩한 1987년 6월의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해 12월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며 5공화국은 막을 내렸고 이후 안정적인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1992년 치러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군이 아닌 민간 출신의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며 문민정부를 출범시켰고 1995년에는 시장·도지사, 교육감, 광역·기초의원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지방자치제도가 처음 실시되기도 했다.

마침내 1997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지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정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거쳐 훗날 촛불정국으로까지 이어지며 더 많은, 더 다양한, 더 좋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됐다. 6·10항쟁은 이처럼 대한민국 민주화는 물론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계기됐다.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은 민중들을 다시 거리로 나오게 했고, 그 촛불의 힘은 현직 대통령 하야를 이끌었다.

이듬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그 해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1987년 6월 당시 부산에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한 변호사가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으로 자리한 것이다. 6·10 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10년만에 처음이었다. 그간 별도의 기념행사를 치르던 시민사회가 처음 정부 공식 기념행사에 함께하기로 한 의미까지 더한 자리였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후퇴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인권은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던 당시 문 대통령의 기념사 처럼 대한민국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역사의 재정립과 진실규명이 절실하다. 실체적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 5·18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다가온다.

주현정기자 doit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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