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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광주 벽화에 밥짓는 모습 빠지지 않는 이유는?

입력 2020.05.14. 17:05 수정 2020.05.15. 17:11
빅카인즈 분석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양동시장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모습. 5·18기념재단 제공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 중 일부다. 2017년 5월 장미대선에서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 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다.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과 피터(토마스 크레취만)가 가장 먼저 대접받는 음식도 주먹밥.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디, 쪼오까 드시요잉∼."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건넨 전라도의 인심이다.

5월 이맘 때면, 옛 '망월동' 가는 길엔 새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다. '이밥(흰 쌀밥)'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 나무. 꽃잎이 뜸 잘든 하얀 밥알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꽃은 '주먹밥'을 떠올리게 한다. 생명과 풍요.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든다고 해서 선조들은 배를 곯는 이웃이 없기를 이 꽃을 통해 빌었다고 한다. 망월동을 입에 올리는 것 조차 금기시되던 1980년대 군부 독재시절, 한 두 그루 심어놓은게 지금의 흰 쌀밥같은 꽃들로 피어나 참배객들을 먼저 맞는다. 동토(凍土)의 역설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양동시장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모습. 5·18기념재단 제공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의 나이.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다(不惑)"고 했다. 흔들림없던 불혹의 세월, 주먹밥의 흔적을 살폈다.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한 광주의 '주먹밥'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다. '광주사태'의 냉혹했던 시절, 고난을 함께 했던 '나눔과 연대의 실천'이다. 모두가 함께한다는 '대동(大同)의 상징'이고 '광주 공동체 정신'의 발로다. '5월 광주'를 다룬 벽화와 그림에 밥 짓는 모습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은 대구에 주먹밥을 보낸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를 활용해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사를 먼저 찾은 뒤 '주먹밥' 키워드로 재검색했다. 1988년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 청문회로 5·18의 참상이 전국에 알려진 이후인 1990년부터 40주년인 올해 5월 15일까지 관련 보도는 모두 2만725건. 이 가운데 주먹밥 관련은 671건이었다. 앞서 1980년 당시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무력으로 광주를 봉쇄하고 언론을 장악했다. 청문회 이전까지 5·18은 불순분자의 폭동으로 매도됐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양동시장에서 주먹밥을 만들고 있는 모습. 5·18기념재단 제공

▶ 영화·전시로 본 주먹밥

올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기념행사 엠블럼은 '오월 주먹밥'이다. 사연이 많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를 고립시키자 시민들이 밥을 지어 시민군에게 나눠줬다. 열흘간 치안 부재 상황이던 당시, 광주의 45개 금융 기관 중 강도의 습격을 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도로가 통제된 광주에 물자가 부족해지자 식료품점, 약국 등이 나서 물자를 공급했으며 시민들은 쌀을 모아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식량 사재기는커녕 집에 있는 걸 들고 나와 나눴다.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는 '시민의식과 5월 그날의 광주'(국제신문) 칼럼에서 "공수부대가 퇴각한 이튿날인 5월 22일 아침 일찍부터 광주 시민은 거리로 나섰다. 시민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난장판이 된 거리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핏자국을 물로 씻어내고, 불탄 차와 바리케이드로 썼던 전화박스, 대형 화분을 치웠다. 계엄군의 봉쇄로 광주는 외부와 통하는 통신·교통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광주에서는 매점매석과 같은 사재기는 없었다. 큰 도로 주변에서 주부들이 가마솥을 걸어놓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제공했고 슈퍼나 구멍가게에서도 빵 우유 드링크제 등을 아낌없이 무상으로 내놓았다"고 묘사했다. '몸뻬' 입고 머리에 수건 두른 채 밥 짓는 '아짐'들의 흑백사진들은 당시 그 기록들이다.

관객 1천220만여 명이 본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요 장면 중 하나. 중앙일보는 "만섭을 연기한 송강호는 이 주먹밥 신을 가장 슬픈 장면으로 꼽았다. 주먹밥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순수했던 광주 사람들이 앞으로 벌어질 비극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어서였다. 서울로 돌아가던 만섭이 차를 돌리는 계기도 주먹밥이다. '함께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상기시켰을 터다"며 "주먹밥이 상징하는 더불어 사는 나눔 공동체의 의미가 광주를 넘어 온 사회로 승화됐으면 한다. 그래야 광주의 아픔이 씻기지 않을까 싶어서다"고 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주먹밥의 관계도 분석

전남일보는 한국 현대사 사료연구소에서 펴낸 '광주 5월 민중항쟁 사료 전집'에 나오는 한 시민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선배 언니가 '자식 키운 사람들이 그렇게 인색하면 못 쓴다'며 '각기 집에서 쌀이라도 조금씩 가져와서 시위하는 학생들에게 밥을 지어주자'고 제안했다. 선배 언니의 제안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성의껏 쌀을 가져오라'고 말을 하자 4되, 3되, 2되씩 들고 와 한 아주머니 집에서 8명의 부인이 모여 주먹밥을 만들었다". 이어 "광주의 주먹밥 나눔은 시작이었고, 나눔은 곳곳에서 이뤄졌다'고 썼다.

'시민군에 주먹밥을 만들어준 함지박'은 전시 작품이 됐다. 동아일보는 5·18 40주년 기념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5·18 당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물건들도 많다.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줄 때 사용된, 다 찌그러진 양은 함지박은 진정 고귀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주먹밥 연관어 분석

▶ 주먹밥의 재해석

올해 코로나19 위기 상황속에서 '광주 공동체'의 상징으로 재조명됐다. 광주매일신문은 나눔과 연대의 상징인 광주 주먹밥이 대구의료진에 전달된 것과 관련해 "과거 정치적으로 앙금이 있었던 광주와 대구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달빛동맹'에 걸맞은 형제도시가 돼가고 있다"며 "어려울 때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전하는 일은 광주지역 공동체 의식인 '광주다움' 그 자체"라고 의미 부여했다.

지역 현대사와 결부해 '나눔의 공동체'라는 지역성(地域性)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조선일보는 "80년 5월의 역사적 경험이 매년 5월 행사장의 '주먹밥'으로 이어져왔다. '원조 주먹밥'은 소금간을 한 주먹형태의 흰쌀밥이지만, 참기름과 참깨, 김가루 등이 더해지면서 '진화'해왔다"며 "이 주먹밥이 이젠 광주를 상징하는 음식브랜드로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광주시가 5·18주먹밥, 브랜드로 키운다'는 기사에서다.

한겨레신문은 "주먹밥은 계엄군에 저항하던 시민들이 만들어 함께 나눠 먹었던 음식으로 대동정신을 의미한다"며 "광주에 주먹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5곳 생겼다"고 전했다. ▶ 동구 광산동 '밥 콘서트' ▶ 동구 동명동 '맘스쿡' ▶ 남구 양림동 '행복한 양림밥상' ▶ 서구 치평동 '다르다' ▶ 케이티엑스(KTX) 광주송정역 '광주주먹밥·오백국수' 등이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5·18 광주'를 각인하는 이미지로도 등장한다. 경향신문이 5·18 40년이 지나, 2030세대 12명에게 '광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인터뷰한 책 '요즘. 광주. 생각.'을 통해서다. 저자인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출신 오지윤(31)·아트디렉터 권혜상(29)씨 등 2명을 인터뷰한 기사에서 "두 사람이 프로젝트를 마치며 구체화한 이미지는 '주먹밥'이다. 세월호의 '노란리본', 제주 4·3의 '동백꽃'처럼 그들이 해석한 광주의 상징이다. 광주에선 5월18일이 되면 시민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힘을 합쳤던 경험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5·18 상징물로도 형상화됐다. 한겨레신문은 "홍성담 작가의 오월판화 연작 중 '횃불행진'에서 머리에 주먹밥 광주리를 인 채 한 손에 횃불을 든 어머니의 모습을 따로 떼어냈다"며 "광주정신 중 나눔과 평등을 뜻하는 주먹밥이 가장 상징적"이라고 설명했다.

유지호기자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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