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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빼앗긴 봄

@김영태 입력 2020.03.29. 12:59 수정 2020.03.29. 19:44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오늘같았던 봄에도 시인에게 절절함이 있었을까. 가슴 저 밑바닥에 비탄과 허무, 저항과 영탄이 교차하며 봄이 봄같지 않음을 탄식했을까. 짙게 드리운 실의와 회한에 잠긴 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은 전체 11연의 시행(詩行)을 통해 '봄이 왔지만 얼어붙은 봄'을 노래했다. 저 유명한 첫째 연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마지막 연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는 '현재'와 '앞날'에 대한 역설적 의미 구조라 풀이된다.

일제강점기 총·칼을 든 악마들의 유린보다 더 가혹한 코로나19 한파가 두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하며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야 초기에 과다할 정도의 대응으로 확산세가 주춤하다지만 유럽과 미국 등은 속수 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잔뜩 독 오른 위세를 진정시킬 의료적 대응 능력은 물론 치료약인 백신 개발도 언제나 이뤄질지 가늠이 안된다.

강토와 들을 빼앗겨버린 시인의 그 때의 봄 처럼, 우리네 지금의 봄도 그렇게 앗겨 버렸다. '가르마 같은 논길'이며,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며,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흙' 등은 정겨움을 드러낼 새가 없다.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던 매화 조차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매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듣보잡 일제강점기에 이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가 화사해야 할 봄을 온통 헝클어 놓았다.

그래서 다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하고 묻는다. 예전처럼 꽃 피고 분가루 날리는 몽환 속의 이상향을 닮은 '울긋불긋 꽃대궐'로 나들이를 나갈 수 있을까.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 붙은 곳으로 꿈 속을 가듯 걸어'갈 날이 올까. 그래도 봄은 만개할 수 밖에 없다. 노랗고 빠알갛고 자줏빛으로 곱디 곱게 산하를 물들인 본연의 춘색(春色)을 어찌할 수 없어서 일 것이다.

이 환란 속에 꽃을 찾고 꽃내음을 맡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진다. 봄은 빼앗긴게 아니다. 다만 흉칙한 돌림병이 그 화사하고 난만함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빼앗긴 들이지만 봄은 이미 와 있다.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고 맨드라미 들마꽃에 인사를 하러 가야할 날이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김영태 주필 kytmd8617@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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