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4(목)
현재기온 24.3°c대기 좋음풍속 1.4m/s습도 55%

'일제신사였다니' 청산되지 못한 역사

입력 2020.08.03. 16:58 수정 2020.08.03. 18:44
국내 유일 보존 목조 신당 건물
강제 참배·사상 개조 '망국의 한'
"단죄비 세우고 교육 활용해야"
일제 시대 광산군 송정면의 송정 신사 모습

"일제 신사(神社)요? 20년간 매일 오가던 곳이었는데 전혀 몰랐어요. 역사적 사실이라도 알 수 있게 안내문이라도 설치되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네요."

지난 1일 광주 광산구 송정공원 내 금선사(옛 송정신사) 앞을 산책을 하던 한 시민은 '이곳이 과거 일제 신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광주 도심 공원 한 가운데 위치한 이 사찰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조선인의 정신개조를 위해 세워진, 망국의 한이 어린 신사다.

일제 시대 광산군 송정면의 송정 신사 모습

칼로 자른 듯 일정하게 쌓인 수십개의 참계(參階·참배하러 가는 계단)를 올라 길게 이어진 직선의 참도(參道·참배하러 가는 길)을 걸어 사당 앞에 설치된 한 쌍의 봉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본 신사의 풍경이다.

대웅전 출입문은 현재 자동문으로 바뀌어 있지만 지난 2014년까지만 해도 일본 전통 창호 양식의 목조 문으로 돼 있었으며 처마 역시 일본식이다.

종무소로 쓰는 건물 역시 격자무늬와 서까래가 일본 신사의 부속건물과 동일한 형태다.

광주 송정공원 내 금선사는 해방 이후 옛 송정신사의 건물을 고쳐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 목조 건물 양식이 남아 있고 신사까지 향하는 참도(參道)나 참계(參階), 신사 앞 한 쌍의 봉등 등 신사에서 볼 수 있는 구조물도 여전하다.

경내에 세워진 '나미아미타불' 탑은 광주 공원 신사 부근에 일제가 세운 충혼탑의 모습과 몹시 흡사하다. 또한 탑에 새겨진 '나미아미타불' 여섯글자는 본래 '황국신민서사'가 새겨졌었다. 황국신민서사는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외우게 한 맹세로 '천황의 신민'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송정 공원이 조성된 금봉산 자락 전체가 일제의 잔재나 다름 없음에도 알지 못한 채 수십년을 지내왔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이곳 금봉산 자락의 석재를 가져다 광주공항 활주로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정신사는 1922년 신명신사(神明神祠)로 세워졌다가 1941년 큰 규모의 신사(神社)로 승격되면서 송정신사로 이름붙었다.

지난 2014년 촬영한 광주 송정공원 내 금선사. 현재의 자동문이 아닌 일제 신사 양식의 목조 문이 남아 있었는데 현수막으로 가려진 모습.

해방 이후 정광학원은 이곳을 사찰로 개보수해 금선사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광주시가 오는 13일 단죄비 제막식을 갖고 이곳이 일제 식민지 잔재물임을 알리는 단죄비를 세울 예정인 가운데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목조 신사 건물인 송정신사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신사는 일제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정신을 개조하고자 한 장소"라며 "전국에 보기 드물게 원형이 보존된 신사를 활용해 일제가 어떻게 우리를 침탈했는지, 역사의 비극이 또다시 재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새기는 역사의 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가 전국 최초로 일제 잔재를 조사해 공식 보고서까지 작성하고 단죄비를 세워 앞장서고 있다"며 "연구와 조사 이후에는 일반 대중들이 이를 잘 알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srb.co.kr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