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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는 복숭아에 속까지 썩어 문드러져"

입력 2020.08.13. 18:11 수정 2020.08.13. 19:03
출하 앞둔 화순 농가 비상
겨울철 이상고온·기록적 폭우
병해충 덮쳐 수확 제로 상태
과실 바닥에 나무엔 빈봉지만
방제도 소용없어 농민 발 동동
13일 오전 찾은 화순 도곡면 대곡리 과수원에는 폭우로 병해충 피해가 커지면서 복숭아들이 썩어가고 있다. 나무에는 과육이 떨어진 빈봉지들만 매달려 있다.

"올해 농사요? 손 들었습니다. 하나도 못 건졌어요. 병충해는 매년 있지만 올해처럼 심각한 경우는 없었어요. 전멸이에요. 맨날 비만 오니까 애지중지 키운 자식 같은 놈들 다 버리게 됐네요."

13일 오전 찾은 화순 도곡면 대곡리 한 과수원, 긴 장마와 폭우로 수천 개의 복숭아가 푹푹 썩어나가고 있었다. 과수원 바닥에는 검은 반점으로 얼룩진 복숭아들이 널려 있었고, 나무에는 과육이 떨어진 채 노란봉지만 매달려 있었다. 나무에 달린 몇 안되는 복숭아도 이미 상해 손가락이 푹푹 들어갈 정도였다. 복숭아 단내를 맡고 달려든 날파리 떼만 가득했다.

이곳에서 만난 농민 오종채(67)씨는 아침부터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의 장화와 옷도 이미 흙투성이였다. 그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성한 복숭아가 있을까 싶어 새벽부터 나무를 훑어봤다"고 했다.

13일 오전 찾은 화순 도곡면 대곡리 과수원에는 폭우로 병해충 피해가 커지면서 복숭아들이 썩어가고 있다. 나무에는 과육이 떨어진 빈봉지들만 매달려 있다.

이내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라며 고개를 젓던 그는 나무에서 복숭아를 따서 보여줬다. "검게 썩은 이런 복숭아를 어떻게 팔 수 있겠냐"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인근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아홉 농가와 다른 지역도 상황이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나는 젊어서 그나마 괜찮은데 나이 팔십 먹은 양반들은 코가 다 빠져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22년 전 이곳에서 첫 농사를 시작한 오씨는 병충해은 늘 있는 일이지만 본격적인 출하를 앞두고 농사를 포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가 올해 6천여 평(2㏊)의 농장에서 복숭아 출하로 번 돈은 75만원이 전부다. 나머지 복숭아는 누군가 해코지라도 하듯 과육 곳곳에 검은 반점(탄저병 등)이 생겨 즙도 짤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해에도 병충해로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 주변 농가들과 올 초부터 방제작업에 더 열을 올렸지만 겨울철 이상고온과 연일 쏟아지는 폭우에 속수무책이 됐다.

13일 오전 찾은 화순 도곡면 대곡리 과수원에는 폭우로 병해충 피해가 커지면서 성한 복숭아를 찾아볼 수 없었다. 군데군데 반점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진 복숭아들.

오씨는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 때 전체 과실의 20%는 병충해가 올 걸 알고 나머지 80% 보고 농사를 짓는데 올해는 전멸이다. 비가 병충해를 몰고 오기 때문에 비 뒤끝마다 약을 했지만 다시 비가 내려 소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오씨는 봄부터 자식같이 애지중이 키우던 복숭아가 땅에서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는 "주변 농가에서 '언제 손 들라요?'라고 묻더라. 나도 이제 손 들었다. 복숭아 냄새가 나야할 과수원에 썩은 냄새가 폴폴 나고 있다"며 "안 울려고 하는데 말하다보니 설움이 북받친다"며 눈물을 훔쳤다.

13일 오전 찾은 화순 도곡면 대곡리 과수원에는 폭우로 병해충 피해가 커지면서 복숭아들이 썩어가고 있다. 나무에는 과육이 떨어진 빈봉지들만 매달려 있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 방황하던 나를 사람 만든 게 복숭아다. 공부하고 부지런을 떤 만큼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복숭아를 키우는 게 낙이었다"며 "내가 먹어보고 '이 맛이다' 싶을 때, 눈에 든 큰놈만 뚝뚝 따내 손님들한테 보내고, 손님들이 '맛있다' 해주시는 재미에 20년을 살았는데 내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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