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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석아·의재의 삶과 노블리스 오블리주

@김성 광주대 초빙교수 입력 2019.10.13. 14:23 수정 2020.09.07. 15:07
김성 광주대 초빙교수

요즘 무등산 기슭 의재미술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무등, 시대의 스승을 품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에서는 근대 광주사회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던 오방 최흥종(五放 崔興琮), 석아 최원순(石啞 崔元淳),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의 후손들이 소장해 온 사진과 유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근대 광주 모습 담긴 귀한 자료들

전시물 가운데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광주학생운동의 요람인 흥학관(興學館)과 춘설헌(春雪軒)의 원래 모습, 계유구락부(회장 최흥종) 회원들 사진, 서서평 선교사와 최흥종 목사의 사회장(社會葬) 사진 등 희귀한 자료들이 처음 공개되고 있다.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은 세 사람이 의재미술관 맞은편에 있는 지금의 춘설헌을 두고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맨 먼저 최원순이 요양을 위해 터를 잡고 ‘석아정’이라고 이름 지었다. 최원순이 타계 후 최흥종이 ‘오방정’이라하여 기거하였다. ‘석아정’ 현판 뒷면에 허백련이 글자와 그림을 그렸다. 해방 이후 최흥종이 폐결핵 환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원효사 부근으로 옮겨가자 허백련이 이어받아 ‘춘설헌’이라고 짓고 1977년 타계 때까지 살았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최흥종은 목사로서 광주YMCA 설립을 주도하였고, 1966년 타계할 때까지 나병과 폐결핵 환자를 보살펴와 그들로부터 ‘아버지’로 불리었다. 최원순은 1919년 일본에서 한국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힌 뒤 국내에서 계몽강연과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신병치료 차 의사인 부인 현덕신 여사와 함께 광주로 와서 조선인 지식인들의 모임인 계유구락부 총무를 맡아 활동하다가 1936년 요절하였다. 허백련은 남종화의 대가(大家)로 뿐만 아니라 1930년대에 연진회를 조직하고, 해방 이후에 1970년대까지 농업학교를 운영하면서 가난한 청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교육가이자 사상가였다.

항일운동에도 나섰다. 최흥종은 서울의 3·1운동 현장에 있다가 경찰에 구속되었고, 연해주에서 항일활동을 하다가 추방되었다. 기독교계가 신사참배를 수용하자 이를 거부하고 다섯가지 욕심을 버린다고 하여 호를 ‘오방’으로 지었다. 최원순은 동아일보 횡설수설란에 ‘총독정치는 악당보호 정치’라고 썼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허백련도 인촌 김성수에서 사회주의자인 지운 김철수까지 폭넓게 교유하면서 국가를 걱정하다가 식민지 말기에 일제가 지도층 인사들을 이용하려 하자 ‘연진회관’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해방 직후 최흥종은 허백련과 함께 각각 교장과 부교장을 맡아 무등산 기슭에 농업학교를 세웠었다. 세 사람의 일대기는 광주 근대사 그 자체이자 노블리스 오블리주(지도자의 도덕적 의무)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시회를 주관한 광주문화재단은 ‘춘설헌’을 한국 근대사에서 호남 최대의 ‘인문학 살롱’이었다고 평가하였다. 주인이 세 번 바뀌었지만 백범 김구, 소정 변관식, 지운 김철수, 다석 유영모, 노산 이은상, 육당 최남선, 미당 서정주, 효당(속명 최범술), 신천 함석헌, 게오르규(‘25시’ 작가), 루이제 린저 등 국내외의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상징

광주문화재단은 24일 오후 2시 전통문화관에서 근대 3인의 선각자의 삶과 사회공헌 활동을 재조명하는 세미나와 세 사람의 손자인 최협(광주YMCA 이사장), 최영훈(전 조선대 미술대학장), 허달재(의재문화재단 이사장) 3인의 토크콘서트도 진행 예정이다.

광주의 근대 유적은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난개발로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그들 3인과 후손을 통해서나마 광주 근대사회의 장면들을 회억(回憶)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후학들은 그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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