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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정은경, 탄저균에서 코로나까지

@허탁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입력 2020.04.10. 16:44 수정 2020.04.13. 15:32

2001년 가을은 미국의 911테러이후 탄저균에 의한 백색가루 테러로 세상이 어지러웠다. 그때 한림대 왕교수가 월드컵을 준비하는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하라는 요청이 왔다. 이렇게 필자는 공식적인 국가 프로젝트에 처음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세계적인 행사 2002 월드컵을 준비한다는 새로운 기대에 마음이 설레었다.

프로젝트는 '생물테러 및 전염병 감시체계 구축과 운영'으로 최종 결정됐다. 당시 법정 전염병 신고체계는 있었으나 이마저도 일선 의료기관에서 신고를 빠뜨리거나 며칠 지연되는 일이 종종 있어 전염병이 창궐하면 2002 월드컵을 제대로 치루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미국의 911테러이후 탄저균과 같은 생물테러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첫 번째 회의는 복지부 주무과장이 주재했다. 주무과장의 첫인상은 여자로서 제법 큰 체격에 짧은 머리, 검고 무표정한 얼굴에 안경을 썼는데 차분하고 강인해 보였다. 당시 대부분의 중앙부처 과장은 상당한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어 권위 의식이 대단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주무과장의 말투와 태도는 나긋나긋하고 침착하며 겸손했다. 이 주무과장이 요즘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20년 전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다.

연구진은 당시 우리나라에 생물테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관련 자료가 없어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정보에 많이 의존했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그 시절 중앙부처 과장이 프로젝트를 직접 챙기는 것은 드물었으나 정은경과장은 매번 회의를 주재하고 진행 상황을 꼼꼼히 파악하고 본인의 생각을 피력하며 우리나라 초유의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2002년 초에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왔으나 적절한지 자신이 없었다. 정은경과장은 필자에게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재난대응의 선진국 일본을 둘러보고 배워 오라고 요청했다. 일본으로 날아가서 후생성, 월드컵 거점병원 관계자들과 공동회의를 가졌다. 일본 관계자들은 생물테러와 전염병 대응은 지역 보건소와 병원이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국가적으로는 준비하지 않았다. 의외의 상황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생물테러 및 전염병 감시체계 프로그램'을 일본의 요청에 따라 정부의 승인을 거쳐 프로그램을 일본에 제공했다. 요즘 아베의 일본이 코로나19 대응을 지켜보면서 20년 전 이 경험이 떠오르며 '너희들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정은경과장의 소식을 10년이 지나 2012년 응급의료과로 발령을 받으며 잠깐 들었다. 2015년 메르스사태가 터졌을 때 대중매체를 통하여 질병관리본부의 정은경센터장으로 고군분투하는 활동을 지켜봤다. 메르스 여파로 쏟아지는 각종 민원 및 상담을 위한 질병관리본부의 핫라인이 1339로 소개되자 2012년 119와의 통합으로 사장된 응급의료정보센터의 안내 전화를 정은경센터장이 이렇게 살려서 활용한다고 짐작했다. 메르스사태에 정은경센터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징계를 받았다.

올해 2월 4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지역감염이 발생하고 16번째 환자가 발생했다. 이날 감염학회, 예방의학회, 그리고 응급의학회가 참여한 코로나19 범학계 대응위원회 회의에서 20년 만에 정은경본부장을 만났다. 볼 살이 빠지고 염색을 하지 않아 흰머리가 많이 보였지만 예전의 그 무표정한 얼굴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사장님 멀리서 오셨네요. 도시락 드시지요."하고 말을 건네 왔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이 철지난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코로나19 대응에 최고의 모범국으로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고 있다. 필자는 그 시작을 20년 전 일본도 생각하지 못했던 '생물테러 및 전염병 감시체계 구축과 운영'에서 찾는다. 이후 2002년 SARS,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를 겪으며 쉬지 않고 개선하여 오늘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2001년부터 이 모든 변곡점을 만든 상황의 중심에 늘 정은경본부장이 있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문성을 갖춘 보건 당국자가 진짜 영웅'이라고 소개한 정은경본부장은 탄저균부터 코로나까지 20년의 준비가 있었다.

허탁전남대 의과대학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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